무궁화이야기


민족의 얼 무궁화

민족의 얼 무궁화

겨레의 꽃 무궁화의 유래
무궁화는 無(없을 무) 窮(궁할 궁) 花(꽃 화)를 써서 이름 그대로 끝이 없는 꽃 이라는 뜻입니다. 아침에 핀 꽃은 저녁에 시들고 다음 날 아침 다른 무궁화들이 새로 피어납니다. 이렇게 매일 새로운 꽃이 100일 동안 꽃을 피웁니다. 우리나라는 땅 끝 마을부터 북한까지 거의 삼천리가 무궁화라고 할 만큼 무궁화가 많이 피어있어 무궁화가 많은 곳이란 뜻으로 "근연" 또는 "근화향"이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무궁화가 우리 국민과 애환을 같이 하며 겨레의 얼로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확실히 부각되었고, 고통속의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우리 민족의 강인한 정신력과 근면한 정신이 무궁화의 생태적 특성과 유사하여 자연스럽게 나라의 꽃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겨레의 얼 무궁화의 정신
  • • 늘 부지런하면서도 항상 새로움 추구
      우리 민족의 타고난 근면성과 진취적 정신의 표상
  • • 청렴하고 결백한 백의 민족정신
      순결한 단일민족의 깨끗하고 진실성 있는 겨레의 품성
  • • 영원한 우정, 강인함과 끈기
      한결같음과 강인한 끈기 있는 민족성
  • • 이웃과 협동하는 겨레의 얼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한마음으로 뭉치는 민족의 정신
  • • 자기완성과 완성의 세계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지향하는 박애정신이 겨레의 참된 멋
무궁화 남궁 억 선생 (南宮 檍)
  • • 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며 언론인, 궁내부 별군직(別軍職), 칠곡부사(漆谷府使), 내부토목국장(土木局長)등을 역임하였고 독립협회에서 활약하였다.
    • 양양군수(養陽郡守), 대한협회장, 관동학회(關東學會) 회장 등을 지내고 배화학당 교사로 있으며 교과서를 편찬하고 교회와 학교를 세웠다.

    일제의 무궁화 말살에 관한 혹독한 탄압속에서도 굳은 의지로 무궁화를 재인식시키는 일을 시작한 애국지사들이 있었다. 바로 그 대표가 될 만한 분이 한서 남궁 억으로 무궁화가 우리 나라의 꽃으로 국민의 가슴에 심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제하에서 애국교육운동에 헌신한 남궁 억의 많은 업적중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업적으로는 두가지를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조선이야기》, 《한국위인(전5권)》,《동사략 (전4권)》등을 지어 민족사 교육을 통해 조국애를 고취한 일이요, 둘째로는 무궁화를 보급하여 잊혀져 가던 민족의식을 고취한 사실이다.
    남궁 억이 교육계에 입신한 것은 1895년 토목국장 재임시 흥화학교에서 국사 시간을 맡았던 일이 처음이다. 그 후 양양군수 당시 현산학교를 세웠고, 1910년 경술국치 후에는 배화학당에 재직하면서 한글궁체를 발굴하여 한글서예의 바탕을 만들었고, 꽃핀 무궁화 열세 송이로 조선 13도를 표시한 한반도 한반도 지도를 도안하여 여학생들에게 수놓게 함으로써 수실 한 올 한 올마다 민족애와 국화애를 심게 하였다.
홍천 모곡리 무궁화사건 (근대, 1933년)
  • • 일제강점기에 탄압에 저항하고자 전국적으로 무궁화를 심어 민족정신을 앙양하고자 한 사건으로 민족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일제에 대항하고자 하였음.

    민족교육자이며 독실한 기독교신자였던 남궁 억(南宮檍)은 민족정신 앙양을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무궁화심기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자신이 설립한 강원도 홍천의 모곡학교(牟谷學校) 학생실습지에 무궁화 묘목을 재배하여 전국 각지에 보내어 무궁화심기운동을 벌였다.
    1933년 일제는 남궁 억의 이와 같은 사업이 불온사상을 고취하고 치란을 교란시킨다 하여 모곡학교 교직원과 교회목사, 그리고 친척들까지 모두 체포하고 무궁화 묘목 8만주를 불태워버렸다.
    이 무궁화사건 취조 중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비밀결사 십자당(十字黨)이 발각됨으로써 사건이 확대되고 수많은 인사들이 구속되었다.
    십자당은 기독교의 진리·박애정신에 입각하여 이상적인 농촌을 건설하려는 것으로 남궁 억이 주동이 되어 조직한 단체였다. 체포된 남궁 억은 1935년 병보석으로 출소할 때까지 옥고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