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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국호 대신 ‘근화향’ 사용…“무궁화 나라” 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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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무궁화수목원 날짜 : 작성일20-09-02 13:21 조회 : 2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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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때 국호 대신 ‘근화향’ 사용…“무궁화 나라” 자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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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5주년 기념 3부작] 옛 문헌으로 살펴보는 무궁화 (상)언제부터 나라꽃이 됐을까

당나라 소종에게 보낸 효공왕의 국서에 쓰여

‘최문창후문집’ ‘동문선’ 등 다수의 문헌에서 기록 발견

다른 나라의 국화 지정보다 900년 이상 앞선 공식 표상
 


우리나라 국화(國花)로 우리 민족과 역사를 함께해온 꽃. 무궁화가 국가와 민족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것은 오래전부터다. 광복 75주년을 맞아 무궁화의 역사와 무궁화가 독립의 표상이 되기까지 등 옛 문헌에 나타난 무궁화에 대한 모든 것을 3회에 걸쳐 알아본다.

 

칠보

세계 각국의 나라꽃 역사는 200년 안팎이다. 18~19세기 무렵 국가상징 개념이 도입돼서다. 당시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근대국가로의 전환, 선거 민주주의 확산과 대중 정치 출현 등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880년대 들어 국가상징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국기(태극기)는 1883년, ‘대한제국 애국가’는 1902년 제정·공포됐다. 그러나 무궁화는 상황이 달랐다. 무궁화는 국가상징으로서 이미 1000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었다.

근화향(槿花鄕). ‘무궁화 나라’라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이르는 말이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그 시작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꽃

신라 효공왕 원년(897), 당나라 소종에게 보낸 국서(國書)에 ‘근화향의 염치와 예양이 스스로 침몰하고 발해의 독기와 심술은 더욱 성할 뻔하였다(則必槿花鄕廉讓自沈 矢國毒痛愈盛·칙필근화향렴양자심 호시국독통유성)’라는 기록이 <최문창후문집> 외 <동인지문사륙> <동문선> <동사강목> 등 다수 문헌에서 발견된다. 신라는 국호 대신, 근화향으로써 무궁화 나라를 자처했다.

이후 ‘고려 때 표사에 본국을 근화향이라 일컬었다(高麗時表詞 稱本國爲槿花鄕·고려시표사 칭본국위근화향)’는 기록 역시 <지봉유설> <해동역사> <동사강목> <증보문헌비고> 등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당시 근화향은 곧 고려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1600년대 초부터의 외교문서를 집대성한 <동문휘고>에도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근화지향(槿花之鄕)·근향(槿鄕)·근역(槿域) 등의 표현이 빈번히 발견된다. ‘무궁화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다른 명칭들이다.

이처럼 신라·고려·조선 시대 모두 근화향, 즉 무궁화 나라가 국호를 대신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편찬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우리나라 호칭을 조선·삼한·해동·좌해·대동·청구 등으로 소개하면서 근화향을 함께 언급한 기록은 앞선 사료들에 무게를 더한다.

그런데 이 기록들에서 유의해 살펴볼 점이 있다. 바로 근화향 표기가 국가간 공식 외교문서에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중국·일본 등 외국에 보내는 나라문서에 근화향 등이 언급된 것은 당시 국내는 물론이고 상대국에서도 우리나라를 무궁화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무궁화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통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향단심

오늘날 국가상징은 한 국가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표상 역할을 한다. 이 관점에서 국가상징 무궁화의 연원은 다른 국가의 나라꽃 지정과 비교하면 900년이나 앞서고, 그 기간은 무려 1100년이 넘는다. 무궁화는 문헌에 남겨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꽃이다.

최근 일각에서 무궁화 역사성과 정체성에 관련해 자의적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신라·고려·조선에 걸쳐 선조들이 기록한 근화향에 대한 1000년이 넘는 역사는 결코 부정될 수 없는 사실이다. 올바른 무궁화 역사 인식과 정체성 정립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진제공=무궁나라

김영만<신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교수>


출처: https://www.nongmin.com/plan/PLN/SRS/325582/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