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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무궁화 역사의 울타리를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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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무궁화수목원 날짜 : 작성일20-09-02 13:19 조회 : 19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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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무궁화 역사의 울타리를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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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꽃 무궁화, 민족 자긍심 대변

관련 연구 절실…국가 적극 나서야
 

무궁화는 국가 상징 가운데 유일한 생명체다. 한반도 강역에서 피어나 우리 민족과 5000년 동안 관계를 맺어왔다. 오늘날 무궁화는 국가 상징으로서 국가 정체성과 국민 자긍심을 대변한다. 이제는 한반도 통일 이후 무궁화의 국화(國花) 제정 논의를 위해 관련 기초자료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 무궁화 관련 인문·사회 분야 연구의 중요성과 그 당위성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무궁화에 대한 인문분야 연구는 최초의 무궁화 관련 논문인 우호익 선생의 <무궁화고(1927년)> 이후 지난 90년 동안 모두 5편에 불과하다. 무궁화의 역사성·상징성·위상 등을 생각해보면 충격적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무궁화에 대한 그릇된 역사 기록이 반복적으로 소개되고, 왜곡된 주장이 마치 사실인 양 미디어에 노출돼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최근 필자는 옛 문헌을 통해 무궁화와 우리 민족의 관계 파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800건에 이르는 무궁화 관련 기록을 찾았다. 그중 조선시대 문헌 기록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인조 이후의 외교문서를 집대성한 <동문휘고>에는 ‘조선’ 국호를 대신해 ‘槿鄕(근향)’ ‘槿域(근역)’ 같은 표현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무궁화 나라’를 뜻한다. 신라·고려 시대 때 자국 명칭으로 무궁화 나라를 일컫는 ‘槿花鄕(근화향)’이 쓰였던 것은 그간 많은 문헌을 통해 확인됐다. 그러나 조선시대 외교문서에 언급된 사례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일본 등 해외에 보내는 나라 문서에 이같은 명칭이 언급된 점은 당시 국내는 물론이고 상대국에서도 우리나라를 무궁화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신라·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대내외적으로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통용됐다. 무려 1000년이 넘은 기간이다. 우리 무궁화는 문헌으로 확인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꽃인 셈이다.

조선시대 시객들이 무궁화에 대해 언급한 내용 중에 ‘槿籬(근리·무궁화 울타리)’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무궁화 생활 울타리 기록은 고려말부터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발견된다. 조선 후기 장혼의 시문집 <이이엄집>은 ‘뽕나무는 울타리 아래 심고 사이사이에 무궁화와 매괴를 심어 빠진 곳을 채운다(桑樹籬下 間之木槿以補缺)’며 울타리에 사용됐던 무궁화 식재 방법까지 상세히 소개했다. 이들 기록은 당시 민가에서 울타리를 조성할 때 무궁화가 널리 활용됐음을 알려준다.

오늘날에는 무궁화 생육에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무궁화의 울타리 활용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다. 그러나 무궁화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생활 울타리로 쓰였다. 무궁화 생활 울타리는 수백년 동안 선조의 삶과 일체화됐고, 기억과 연상의 회상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안팎의 경계를 구분 짓는 뜻으로도 통하는 울타리의 의미가 무궁화 울타리에 적용돼 무궁화가 곧 ‘우리 집’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고, 나아가 ‘우리 마을’ ‘우리 강역(국가)’으로까지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상징도 위기를 맞을 때가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토대가 굳건해야 한다. 토대가 마련돼 있지 않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 최근무궁화가 잘못된 국가 상징이라며 그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제라도 무궁화 관련 인문·사회 분야 연구가 국가 주도로 시작돼야 한다. 무궁화 역사의 울타리를 올바로 세워야 할 때다.

김영만 (신구대 미디어콘텐츠과 교수)



출처: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TME/325385/view